디지털 전환(DX), IT

팔란티어, 한국 산업 현장에 들어오다

SwimPark 2025. 5. 12. 01:25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는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CIA의 초기 투자로도 잘 알려진 회사다. 국방·정보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이 기업은 최근 민간 산업 중심의 플랫폼 확장을 추진하며 한국 시장에서도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특히 조선, 방위산업, 반도체, 통신 등 고도 산업에 특화된 기업들과 협력하며 국내 기업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1. HD현대: 스마트 조선소를 위한 데이터 동맹

2022년 CES에서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지주)는 팔란티어와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HD현대는 팔란티어코리아 유한회사의 지분 25.1%를 인수하며 단순 고객 관계를 넘어 지분 참여를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협력의 중심은 스마트 조선소 구축과 무인 선박(USV) 개발이다. HD현대는 조선 및 중공업 영역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팔란티어의 플랫폼을 통해 통합·분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산 효율을 높이고, 운영 자동화 기반을 다지고 있다.

2. KT: 통신 인프라와 AI 분석 기술의 결합

KT는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를 자사 운영 시스템에 도입해 비즈니스 품질 향상, 내부 의사결정 최적화, AI 역량 내재화 등에 활용 중이다. 특히 KT의 보안 강화 클라우드 인프라(KT SPC)는 팔란티어와의 협력에서 중요한 기술 기반이 되고 있다.

양사는 데이터 주권 및 개인정보 보호 이슈를 고려해 클라우드 환경에서의 데이터 통합·활용을 안전하게 구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임직원 대상의 AI·데이터 교육 프로그램도 공동으로 추진해 장기적인 인재 내재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3. LIG넥스원: 방산 분야에 침투한 AI 데이터 분석

팔란티어의 국방 특화 플랫폼 ‘고담(Gotham)’은 LIG넥스원을 통해 한국의 방위산업 분야에 적용됐다. LIG넥스원은 미래 무기체계 개발과 관련된 R&D 프로젝트에 팔란티어 플랫폼을 도입함으로써, 복잡한 기술 자료와 운영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는 군수품 개발의 효율성과 국방기술의 데이터 기반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는 흐름으로 해석되며, 국방 분야 내 AI 및 빅데이터 접목의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4. 삼성전자: 반도체 데이터, 외부와 공유하다

삼성전자는 2024년 말부터 반도체 부문(DS, Device Solutions)에 팔란티어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도입했다. 주된 적용 대상은 HBM(고대역폭 메모리) 및 3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품질 및 수율 개선이다.

삼성전자가 외부 민간 기업과 반도체 제조 공정 데이터를 공유하는 사례는 극히 드문데, 이는 팔란티어의 보안 역량과 산업별 맞춤형 분석 기술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동시에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데이터 기반 R&D 전환이라는 신호탄으로도 의미를 가진다.

5. 기술 기반: Foundry, Gotham, AIP

팔란티어는 민간 기업용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와 국방·공공 부문용 ‘고담(Gotham)’을 주요 제품으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온톨로지 기반의 데이터 구조화 기술과 생성형 AI 기반 플랫폼인 AIP(Palantir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도 국내 고객에 확장 적용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은 복잡한 대규모 데이터를 하나의 체계로 통합해 시각화하고, 현장 실무자의 직관적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 단순한 시계열 분석을 넘어, 시스템 시뮬레이션, 리스크 예측, 자원 최적화 등 고차원의 분석 기능이 통합되어 있다.

6. 산업적 의미와 시사점

팔란티어의 국내 도입은 단순한 외산 소프트웨어 수입이 아니다. 이는 한국의 중후장대 산업—조선, 반도체, 방산, 통신—에서 ‘데이터 주도형 운영체제’로의 전환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산업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DX(디지털 전환) 속도 가속화: 전통적인 제조·기술 산업 분야에서 AI와 데이터 분석이 실제 생산성과 연결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 보안과 협업의 균형 모델: 삼성전자의 사례처럼 산업 기밀이 매우 중요한 분야에서도 외부와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 AI 인프라 내재화: KT와 같은 국내 대기업은 단기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교육·보안·인프라 전체를 포함하는 협력 모델을 구축 중이다.

결론

팔란티어는 단순한 분석 툴 제공업체가 아니다. 이 회사는 고객의 데이터를 통합·정리하고, 분석 가능하도록 구조화한 뒤, 그것이 실제 경영과 정책 결정에 활용되도록 전체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운영 체계 공급자’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 실험을 넘어 실질적인 업무 구조 변화와 산업 전략 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향후 의료, 공공서비스, 금융 등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열려 있으며, ‘AI 전환(AX)’을 모색하는 한국 산업계 전체에 팔란티어는 강력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